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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북중미 월드컵을 부탁하오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by trendoo 202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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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감독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선임되었다.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의 전문성과 경험을 강조했다. 이전 헤르타 베를린 감독직에서 물러난 이후 3년간 공백이 있었지만, 카타르 월드컵 국제축구연맹 기술연구그룹(TSG) 일원으로 참가해 현대적인 전술과 데이터 활용 능력을 키웠다.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는 국내 지도자들이 최종후보 5인에 들지 못했으며, 국내외 감독 61명의 리스트에서 23명으로 줄인 뒤 5명의 최종후보군을 뽑았다. 이후 다시 2명으로 압축한 뒤 클린스만 감독과 접촉하여 선임되었다.

뮐러 위원장은 이 과정에서 국내외 축구 감독 후보군 모두를 고려하였으며, 한국 축구를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감독을 결정하기 위해 전체적인 관점에서 검토했다. 새로운 감독이 한국 축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기대하며, 한국적 요소를 고려해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마이클 뮐러'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 강화위원장은 2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축구 대표팀의 득점력 강화에 대해 언급했다. 뮐러 위원장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선임 배경 중 하나로, 한국팀의 득점력 강화를 꼽았다. 그는 클린스만 감독이 쉽게 간결하게 득점하는 것을 선호하며,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한국과 포르투갈전 역습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의 축구 스타일을 참조하여, 한국 대표팀이 공을 빼앗겼을 때 수비 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지, 수비 전환 시 즉각적인 압박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전체적으로 콤팩트하게 전환할 것인지 등을 기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의 마음가짐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으로 확실하다고 언급하면서, 감독 인터뷰에서 더 구체적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다음 주 한국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예정하며, 24일 콜롬비아와 28일 우루과이와의 국내 A매치에서 사령탑 데뷔전을 치를 예정이다.

 

1. 1994~1996, 아나톨리 비쇼베츠 (Анатолий Фёдорович Бышовец)

아나톨리 비쇼베츠는 1994년부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서는 23세 이하 올림픽 대표팀을 맡아 윤정환의 페널티킥 결승골로 1-0으로 가나를 잡았고,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멕시코를 5-3으로 꺾어 첫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그러나 최종전에서 이탈리아에 1-2로 패하여 8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이후 비쇼베츠는 올림픽축구 11위로 탈락한 후 한국으로 오지 않고, 미국 현지에서 러시아로 돌아갔다. 그러나 계약 기간은 다 채웠기 때문에 중간에 잘린 감독은 아니었다.

2. 1998~2002, 거스 히딩크 (Guus Hiddink)

거스 히딩크(Guus Hiddink)는 1946년에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감독으로, 1998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세계 4강으로 이끌었다.

히딩크는 1994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으로 축구 월드컵에 나갔고, 이후에는 스페인 라리가에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레알 마드리드 등 다수의 클럽에서 감독 경력을 쌓았다. 그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는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상 최고의 성과를 이룬 인물 중 하나이다.

히딩크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을 세계 4강으로 이끌었고, 이후에는 호주, 러시아, 터키, 알제리 등 다수의 국가대표팀에서 감독 경력을 이어갔다. 특히, 호주 대표팀 감독으로는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호주 역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이루었다.

히딩크는 그의 감독 방식과 성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는 국민적인 인기를 끌었고,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3. 2003~2004, 움베르투 코엘류 (Humberto Coelho)

한국 축구 대표팀이 고집해왔던 '피지컬 좋은 타겟 스트라이커'를 버리고, 패스와 테크닉 위주의 전술로 변화를 꾀하였다. 이를 이끈 코엘류 감독은 홍명보가 은퇴한 수비 라인을 포백으로 변화시키기도 하였고, 남미축구의 특유한 테크닉을 도입하여 공격을 진행하였다. 이에 따라 플레이메이커 선수들이 더 많은 기회를 부여받게 되었다. 또한, 코엘류 감독은 조재진, 조병국, 김두현, 김동진, 정경호, 최성국 등 젊은 선수들을 과감히 발탁하였다. 그러나 코엘류 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다져놓은 강력한 체력과 압박을 기본으로 한 전술을 도입하였던 시기였기 때문에, 여론의 비난과 한국 축구인들의 찌르기에 노출되는 일이 많았다. 이에 비해 히딩크 감독은 직설적인 태도와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하나로 만들었다. 코엘류 감독은 성격이 부드럽고 신사적이었던 편이어서, 한국 축구인들과 언론의 비난에 조금 흔들릴 때마다 많은 압박을 받았다. 한국 축구 대표팀과 K리그의 갈등도 코엘류 감독 시절에 많았다. 월드컵 이벤트를 위해 K리그를 포함한 한국 축구 전체가 국가대표팀을 위해 희생한 것과는 달리, 월드컵 이후에는 K리그 구단들도 무조건적인 희생을 감수하지 않았고, FIFA의 규정을 준수할 것을 축구협회에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코엘류 감독은 자신이 한국을 떠나면서 "14개월 동안 실제 훈련장에서 훈련한 시간이 72시간에 불과하다"는 말로 국가대표팀과 K리그의 갈등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4. 2004~2005, 조 본프레레 (Jo Bonfrère)

조 본프레레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이동국을 주전으로 기용하며 월드컵 예선전의 주축으로 삼았다. 이 시기 이동국은 본프레레의 황태자로 불리며, 본프레레호의 모든 대표팀에 한 번도 빠짐없이 발탁되었다. 이후, 이동국은 아드보카트호에서도 주전 공격수로 기용되었다. 조재진과 정경호 등 전반적으로 피지컬이 좋거나 발이 빠른 선수들을 중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본프레레호 시절이 미스테리한 점이 많았으며, 이는 아드보카트 감독이 본선 직전 준비 과정이나 본선에서의 경기 운영 및 용병술이 많이 아쉬운 수준이었기에 월드컵 본선에 한정해서 본프레레 체제를 그대로 적용했다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른다는 결과론적인 가정이다.

 

5. 2005~2006, 딕 아드보카트 (Dick Advocaat)

대표팀이 대회 17위로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한 비판은 그리 많지 않았다. 대회 준비 기간이 충분하지 않았음에도, 대표팀은 사상 첫 원정 승리와 승점 4점을 거둔 것으로,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여줬다. 대표팀이 러시아와의 사전 계약으로 인해 빠르게 날아갔던 것은 아쉬웠지만, 대한축구협회와 추가 계약을 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8개월 동안 몇 가지 TV 광고를 찍으면서 축구 외적인 돈벌이에 급급한 모습을 보여줬고, 전술적인 면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대표팀이 2006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성과를 고려하면,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축구로써 좋은 성과를 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6. 2006~2007, 핌 베어벡 (Pim Verbeek)

2005년 가을, 딕 아드보카트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수석코치를 맡아 2006년 독일 월드컵을 함께 하였다. 이후 감독으로 승격되어 2007년 AFC 아시안컵 본선에서는 3위로 대회를 마쳤지만, 6경기 3골의 저조한 득점력으로 비판을 받았다. 토너먼트 3연속 승부차기라는 기행 속에서 이운재의 승부차기 선방만큼은 매우 빛을 발해 4강에 올랐고, 이 시기의 빈곤한 득점력으로 인해 대표팀 역대 최장시간 무득점 기록을 세웠다. 이때 베어벡 감독은 포백을 국대 수비진에 정착시켰다. 이후 국대 수비진은 포백 구성이 베이스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러한 포백은 현재에도 남아있다.

 

7. 2014~2017, 울리 슈틸리케 (Uli Stielike)

1974년부터 1990년까지 독일의 프로 축구 리그에서 활동하였으며, 독일 대표팀에서도 42경기에 출전하였다. 그 후, 감독 생활을 시작하여 스위스, 카타르, 코트디부아르, 카메룬 등 다양한 국가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하였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는 2014년부터 2017년까지 활동하였다. 그는 월드컵 예선에서의 성적이 좋지 않아서 큰 비판을 받았지만, 그 후 2015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우승, 2016년 아시안컵 준우승 등의 성적을 거두며 선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2017년 월드컵 예선에서 참패가 계속되자 감독직을 사임하게 되었다.

8. 2018~2022, 파울루 벤투 (Paulo Bento)

포르투갈 축구 선수 출신 감독으로, 2018~2022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역임. 2002 한일 월드컵 때 포르투갈 대표팀 소속 선수로 대한민국을 방문해 대표팀과 조별리그 경기를 했음. 은퇴 후 스포르팅 CP, 포르투갈 대표팀 감독 역임하였다.  2018년 8월 23일, 한국 대표팀 감독으로 취임해 역대 한국 대표팀 감독 중 최장기로 재임. 2022 FIFA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16강으로 이끌며 본인의 자질을 증명하였다.

그의 전술로는 후방 빌드업과 수비 전환에서는 전술적인 플레이를 강조하나 후방 빌드업이 끝난 후에는 선수의 개인기를 바탕으로 자율적인 플레이를 추구하였다. 전술적 움직임을 세세히 요구하기보다는 선수 개인의 실력과 움직임에 직접적으로 코칭하며, 전술이나 용병술은 보수적이었다. 확고한 점유율 중심을 기본으로 하되, 빠른 템포의 전진패스를 통한 속도감 있는 공격 전개를 주 전술로 사용했다. 공격 시에는 4-2-3-1이나 4-4-2, 혹은 4-1-3-2이 주요 트레이드 마크이며, 수비 시에는 4-4-2 전술을 이용해 공격수 2명부터 차례로 전방압박을 시작해 공을 직접 뺏어내거나 롱볼을 유도해 따내는 전략을 사용했다. 전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후방 빌드업으로, 후방 빌드업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 골키퍼를 거의 낙점되어 있었던 조현우에서 김승규로 바꾼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술은 빠른 축구를 추구하기 때문에 경기가 잘 풀리면 굉장히 재미있는 경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안 풀린다면 고전적인 경기로 갈 수밖에 없다. 라인을 잘 올리는 강팀 상대로는 잘 통하나 라인 내린 약팀 상대로는 고전하기 쉽고, 중앙에서 풀어주는 선수가 없다면 힘들어지는 전술이기도 하다.

 

9. 2023~ , 위르겐 클린스만 (Jürgen Klinsmann)

독일 출신 축구 감독으로, 선수 시절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다.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현재 부임 되었다. 슈투트가르트에서 데뷔해 87-88 시즌 분데스리가 득점왕 등 5년간 활약한 뒤 인터 밀란으로 이적, 90-91 시즌 UEFA컵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AS 모나코를 거쳐 토트넘에서 FWA 올해의 선수를 수상하고 발롱도르 2위, FIFA 올해의 선수 3위에 올랐다.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여 그 시즌 UEFA컵에서 득점왕에 오르며 우승했고 다음 시즌에는 분데스리가 우승까지 차지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우승, 유로 1996 우승 및 유로 1992 준우승에 기여하며 A매치 108경기 47골을 기록, 센추리 클럽 회원으로서 10년 이상 대표팀의 핵심 스트라이커로 활약했다. 현역 은퇴 후 독일 대표팀 감독으로 2006 독일 월드컵에서 3위를 기록하였고, 미국 대표팀 감독으로도 2013년 골드컵 우승 및 2014 브라질 월드컵 16강 진출 등 호성적을 거두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끌어 16강 진출이라는 선전을 한만큼 후임자인 위르겐 클린스만이 국가대표팀을 잘 이끌어 2026년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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